故 事 成 語 미 봉 책(彌縫策) 彌:두루 미. 縫:꿰멜 봉, 策:계략 책, 임시로 꿰매는 것으로, 일을 근원부터 완벽히 해결하지 않고 임시 변통으로 처방함.
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환왕(桓王) 13년(B.C. 707)의 일이다. 환왕은 명목상의 천자국(天子國)으로 전락한 주나라의 세력 을 만회하기 위해 정(鄭)나라를 치기로 했다. 당시 정나라 장공 (莊公)은 날로 강성해지는 국력을 배경으로 천자인 환왕 을 무시 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왕은 우선 장공으로부터 왕실 경사(卿士)로서의 정치상 실권을 박탈했 다. 이 조치에 분개한 장 공이 조현(朝見:신하가 임금을 뵙는 일)을 중단하자 환왕은 이를 구실로 징벌군을 일으키고 제후(諸侯)들에게 참전을 명 했다. 왕명을 받고 괵(?) 채(蔡) 위(衛) 진(陳)나라 군사가 모이자 환 왕은 자신이 총사령관이 되어 정나라를 징벌하러 나섰다. 이런 일이 곧 천자(天子)의 자장 격지(自將擊之)는 춘추 시대 240여 년 동 안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윽고 정나라의 수갈(繡葛:하 남성 내)에 도착한 왕군(王軍)은 장공의 군 사와 대치했다. 공자 (公子)인 원(元)은 장공에게 진언했다. "지금 좌군(左軍)에 속해 있는 진나라 군사는 국내 정세가 어지 럽기 때문 에 전의(戰意)를 잃고 있습니다. 하오니 먼저 진나라 군사부터 공격하면 반드시 패주할 것입니다. 그러면 환왕이 지 휘하는 중군(中軍)을 혼란에 빠질 것이며 경사(卿士)인 괵공이 이끄는 채 위나라의 우군(右軍)도 지탱하지 못하고 퇴각할 것입 니 다. 이 때 중군을 치면 승리는 틀림없습니다. " 장공의 원의 진언에 따라 원형(圓形)의 진(陣)을 쳤는데 이는 병거(兵車: 군사를 실은 수레)를 앞세우고 보병(步兵)을 뒤따르 게 하는 군진(軍陣)으 로서 병거와 병거 사이에는 보병으로 '미봉'했다. 원이 진언한 전략은 적중하여 왕군은 대패하고 환 왕은 어깨에 화살을 맞 은 채 물러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