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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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ㅡ4화]정감에 눈뜬 어우동(於宇同)
어우동은 응원문 지사였던 박윤창(朴允昌)의 딸이었다. 어우
동의 집안은 부자였고, 또 그는 매우 얼굴이 잘생기고 고왔으나
성품이 방탕해서 문제였다.
어우동은 태강(泰江) 군수를 역임한 왕족 이동(李仝)과 혼인
했는데, 혼인 후 얼마 되지 않은 어느날, 남편이 은으로 물건을
만드는 장인(匠人)인 은장(銀匠)을 불러 집 안뜰에 와서 은그릇
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꼿資?부탁을 받은 은장이 집 뜰에 와서 은 녹이는 풀무 등
의 기구를 설치하고 은그릇을 만드는데, 방안에서 이 모습을 내
다보고 있던 어우동은 그 은장의 젊고 늠름한 모습에 그만 가슴
이 달아오르고 아랫도리가 요동하기 시작했다.
"내 저런 남자를 놓칠 수는 없지, 바로 접근을 시도해야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여종이 입다가 벗어 놓은 ?옷을 입고
는 여종인 체하며 은장이 일하는 뜰로 내려갔다. 그리고 은장이
일하는 옆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하는 일도 돕고 심부
름도 하며 가까이했다.
한참 동안 이렇게 접근하니 서로 무간한 사이처럼 되었고, 기
회를 보아 어우동은 이렇게 말했다.
"집에 어른들이 없으니 마루로 올라와 술이나 한잔 하고 좀
쉬도록 하십시오."
이에 은장은 마루로 올라와 술을 받아 마셨고, 곧 어우동은
은장을 방안으로 유인해 들어가서 여종이 아니라 부인임을 밝히
며 끌어안고 정열을 불태웠다. 이후, 어우동은 수시로 이 은장을
불러들여 남편이 없는 사이에 관계를 계속했는데, 어쩌다가 남
편이 낮에 집에 들르는 때가 있으면, 은장은 벽장 속에 숨겼다가
남편이 나가고 나면 나오게 해 다시 그 행사를 계속하곤 했다.
이런 관계가 너무 오래 지속되니 자연히 남편에게 꼬리가 잡혀,
마침내 어우동은 남편에 의해 쫒겨나고 말았다.
어우동은 그 자신이 성적 충동에 민감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가 외간 남자를 많이 접하게 된 데에는 역시 성적 충동에 강한
반응을 나타내는 여종의 도움이 컸다. 어우동은 남편과 헤어진
후, 얼굴이 예쁘게 생긴 이 여종과 함께 살면서 본격적으로 거리
낌없는 음행을 자행했다.
날마다 밤이 되면, 여종이 화장을 진하게 하고 고운 옷을 입
고 길거리에 나가서 서성거리다가, 훤칠하고 얼굴이 잘생긴 남
자를 만나면 유인해 와서 주인인 어우동에게 붙여 주고, 또 나가
서 자신도 다른 남자를 꾀어 데리고 와서 함께 잠자리를 했다.
매일 밤 몇 번씩 남자를 접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불꽃같이
강렬한 두 색정 여인의 생활은 이렇게 계속되었다.
두 여인은 큰길가에 집을 얻어살았다. 그리고는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지나가는 남자들을 내다보고 있鳴?여종이,
"아씨! 저 남자는 젊고 코가 크니 아씨에게 알맞습니다."
하고 말하면, 어우동이 그 말을 받아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이 남자는 내가 하고 저 남자는 너에게 주마."
이러고 맞장구를 치면서 하룻밤도 그냥 보내는 날이 없었으
니, 당시 조정 관리들과 유생들, 그리고 젊은 무뢰한들이 모두
그를 맞아 음탕하게 놀았다. 이런 소문이 퍼지니 조정에서는 이
들과 잠자리를 한 수십 명의 남자를 잡아들여 국문도 하고 관직
에서 파면시키거나 귀양을 보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죄를 면한 사람 또한 수없이 많았다.
조정에서 어우동의 죄를 논의할 때, 많은 대신들이 법에 의하
면 사형은 시킬 수 없으니 귀양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
나 임금은 민간 풍속을 정화해야 한다면서 사형에 처하도록 명
했다.
어우동이 수례를 타고 사형장으로 가는데, 함께 놀아났던 여
종이 어우동의 허리를 껴안고 속삭였다.
"아씨, 아씨! 슬퍼하지 말아요.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이보
다 더 큰 변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는,
"아니, 사형을 당하는 일보다 더 큰 변이 또 무엇이냐?"
하면서 크개 소리내어 웃었다.<조선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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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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