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 /타이 /출랄롱코른 국왕의 시암 개혁에 대한 고문서(1868~1910)
[Archival Documents of King Chulalongkorn’s Transformation of Siam (1868-1910)]
국가 : 타이(Thailand)
소장 및 관리기관 : 타이 국립도서관
등재연도 : 2009년
참고번호 : 2008-34
오늘날의 타이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서양의 식민주의와 현대화의 맥락 안에서 시암(Siam) 왕국의 출랄롱코른 왕(King Chulalongkorn, 1853~1910)이 시행한 정책과 관습을 물려받았다. 국가 관료주의, 영토 보전과 통치권을 갖춘 중앙집권적 정부, 직업적인 무장 세력과 경찰, 현대적 법 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독립적 사법부, 강대국과의 외교 관계의 수립 등이 이에 포함된다. 출랄롱코른 국왕의 시암 개혁에 대한 고문서(Archival Documents of King Chulalongkorn’s Transformation of Siam)는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진 성공적인 노예 해방, 도박 근절, 공립학교의 설립, 불교 교단의 개혁, 농업생산의 증대, 시장경제 및 금융제도 같은 사회 정책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이런 정책은 시암 왕국이 독립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당시 세계적으로도 드문 위업이었다.
타이어로 기록되어 있는 유산에는 이러한 위업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이 문서들은 뽕나무와 코이(Khoi) 나무로 만든 타이 산 종이에 손으로 필사하거나 수입 종이에 인쇄된 것이다. 출랄롱코른 왕과 각료들 간의 공식·비공식 서신과 각서, 관리 간의 보고서, 회의 보고서, 왕의 재위시 칙령과 포고령의 초안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문서들은 채택된 개혁안의 내용과 채택 이유, 전략, 집행 과정과 결과에 관한 기본 자료이다. 1892년 이후에 수립된 왕실 정부와 12개 부처에서 작성된 것으로서 진정성이 있고 독창적이다. 타이 국립도서관과 타이 국가기록보관소에 소장되어 있으며, 1952년부터는 다른 나라의 학자들도 이용할 수 있다. 미국·오스트레일리아·유럽·아시아의 대학에서 비교 역사와 정치학을 공부하는 타이 학생들은 이 문서들을 이용하여 30여 편의 박사 논문과 저서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세계적 중요성, 고유성(독창성), 대체 불가능성 :
• 세계적 중요성
1960년대에 출랄롱코른 왕의 문서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던 코넬 대학의 역사학자였던 데이비드 K. 와이엇(David K. Wyatt, 1937~2006) 교수는 42년간의 출랄롱코른 왕의 통치 기간이 “옛 시암 왕국과 현대 타이 사이의 확연한 단절”이라고 결론지었다. 세계 역사의 맥락에서, 출랄롱코른 왕의 행적은 더 많이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타이는 서양이 식민지를 넓혀가는 가장 위협적인 시기에 마지막까지 독립국으로 존속했던 몇 안 되는 아시아 국가 중 하나이다. 과도기였던 각국의 특성이 달랐으므로 해당 국가들의 존속 가능한 이유도 서로 달랐다. 그러나 타이가 독립국으로 존속할 수 있었던 중요한 특징은 사회와 정부의 개혁이 대부분 상부로부터의 개혁이었다는 점이다. 즉 지도자들은 시대의 요구를 잘 파악하고 국가와 국민에게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발전을 위한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할 수 있는 예지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개혁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와이엇, 1969, 376
출랄롱코른 왕의 다양한 정책에 관련된 문서는 방콕에 있는 국립기록보관소 컬렉션의 핵심이다.
출랄롱코른 왕의 통치기인 1868년~1910년에 만들어진 문서들은 세계적 중요성을 지녔음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이유는 이 기록물들은 세계적인 사회적·정치적·경제적·문화적 발전에 있어 세계적인 사상 사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민주의 그늘 아래 있던 라마 3세(Rama III, 1798~1851) 통치기에 처음으로 유럽 국가들과 교류하게 된 타이는 교육적·경제적·사회적·정치적·문화적인 면에서 서양의 발전 상황을 인식하게 되었다. 타이는 유럽의 천문학과 수학 지식을 접하면서 1868년에 개기일식을 예측할 수 있었다. 출랄롱코른 왕자는 당시 15세였지만 영국 여성에게서 영어를 배워 이미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일식이 발생한 후 몽쿠트(Mongkut) 왕(라마 4세)이 말라리아로 사망하였고, 15세 소년인 출랄롱코른 왕자가 섭정의 도움으로 타이의 통치자가 되었다.
어린 왕은 전 세계적인 사회적·정치적·문화적 발달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와 유럽 각국의 통치자와 유능한 관리들과 만나서 배우고 의견과 경험을 교류할 목적으로 그 국가들을 방문하였다. 그는 싱가포르·자바(인도네시아)·인도·미얀마를 방문하였고, 1897년과 1906년에 유럽 국가들을 두 차례 방문,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았다. 그렇게 하여 얻은 경험과 지식을 국가 개혁과 현대화에 활용하여 문제 해결과 현대 사회 건설에 활용하였다.
• 고유성(독창성)
다른 국가에서는 노예제 폐지 때문에 내전이 발생하기도 했으나 타이에서는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노예제 폐지를 추진하였다. 이러한 개혁 내용이 담긴 기록 유산은 국제관계 안에서 전통 국가 및 사회를 현대 사회로 변혁시킬 중요한 정책을 숙고하고 집행한 원본 기록물로서 독창성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a) 군주의 권력, 권리 및 책임을 관리와 국민에게로 점진적으로 이양한 것에 관한 문서.
(b) 행정 법규와 활동에 관련된 문서.
(c) 현대 교육제도 수립에 관한 문서-음절, 교과서, 교사 실습, 학교 부지, 시험, 직업 훈련 등.
(d) 출랄롱코른 왕이 해외 유학 중에 쓴 편지와 직접 쓴 희곡 「응우아빠(Ngua-Pa)」 필사본.
• 대체 불가능성
이 문서들은 세계적 수준에서 독창적이고 중요하다. 특히 국가의 자유가 위기에 처했을 때 대외적으로 중대한 어려움을 해결한 효율적인 방법을 보여 준 지적 산물이다. 이 기록물을 보존하는 것은 식민 통치를 받지 않은 국가를 변혁과 현대화로 이끈 평화적 정책과 실천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일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출랄롱코른 국왕의 시암 개혁에 대한 고문서(1868~1910) [Archival Documents of King Chulalongkorn’s Transformation of Siam (1868-1910)]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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