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의 시조 광무제(光武帝)때의 일이다. 광무제 유수(劉秀)는 한 (漢:前漢)나라를 빼앗아 신(新)나라를 세운 왕 망(王莽)을 멸하고 유현(劉玄)을 세워 황제로 삼고 한나라를 재흥했 다. 대사마(大司馬)가 된 유수는 그 후 동마(銅馬) 적미(赤眉) 등의 반 란 군을 무찌르고 부하들에게 추대되어 제위에 올랐으나 천하 통일 에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이윽고 제(齊) 땅과 강회(江淮) 땅 이 평정되자 중원(中原)은 거의 광 무제의 세력권으로 들어왔다. 그 러나 벽지인 진(秦) 땅에 웅거하는 외효( )와 역시 산간오지인 촉 (蜀) 땅의 성도(成都)에 거점을 둔 공손술(公孫述)만은 항복해 오지 않 았다. 중신들은 계속 이 두 반군의 토벌을 진언했다. 그러나 광무제는 이렇게 말하며 듣지 않았다.
"이미 중원은 평정(平定)되었으니 이제 그들은 '문제시할 것 없소 [度 外視]."
광무제는 그간 함께 많은 고생을 한 병사들을 하루 속히 고향으로 돌 려보내어 쉬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